상대방에게 대화 시작, 하나님의 뜻 생각, 원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가족들도 깨어진 관계의 화해와 평화가 참된 예배이다. 가족끼리 서로 화해하고 있는 모습!]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직장 동료, 그리고 이웃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늘 화목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저마다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크고 작은 오해가 생기고 때로는 격렬한 다툼이나 갈등을 겪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균열은 우리의 마음을 깊은 상처와 고통으로 물들이고, 심령의 평안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곤 합니다. 믿음의 성도들 역시 이러한 세상 속 갈등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예기치 못한 다툼과 분쟁이 찾아왔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야 할까요? 신약 성경 마태복음 5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관계의 회복에 대한 아주 단호하고도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십니다.

"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네 길로 가서 먼저 네 형제와 화해하고 그 뒤에 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24)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와 예물조차도 깨어진 인간관계의 화해보다 앞설 수 없다는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영적 도전과 울림을 줍니다. 다툼을 해결하고 진정한 평화를 되찾는 비결은 인간적인 수단이나 감정의 싸움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의 귀한 말씀을 근거로 하여, 우리 삶의 갈등을 종식하고 은혜로운 화목을 이루는 하늘의 전술을 깊이 있게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과연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먼저 상대방에게 대화를 시작"하고, 모든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갈등 해결의 "원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성경적 해답을 얻을 것인가에 대하여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선 상대방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분쟁과 냉전을 종식하는 출발점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가 진실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누군가와 갈등을 겪게 되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입을 닫아버립니다. 섣불리 먼저 말을 건넸다가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대방에게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침묵과 냉전이 길어질수록 오해의 골은 깊어지고 양측의 간격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이 먼저 손을 내미는 영적 용기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사이에서 가축과 목자들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집안의 어른이라는 권위나 체면을 고집하지 않고 먼저 롯에게 다가가 사랑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12장 9절에서 "사랑에는 거짓이 없으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권면하며, 가식과 위선이 없는 순수한 사랑이 기독교 윤리의 근간임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은 배우들의 연기처럼 겉만 꾸미는 가짜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함이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악을 멀리하되, 악을 행한 사람조차도 품고 기도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20절의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는 말씀처럼, 원수까지도 사랑으로 대접하는 포용력이 있을 때 공동체의 본질이 회복됩니다. 우리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에 빚어진 귀한 그릇들입니다. 내 뜻과 감정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선시할 때, 막힌 대화의 문이 열리고 얽힌 실타래 같은 갈등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삶의 모든 다툼과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의 이익이나 주장을 내세우기 전에, 이 상황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롯의 다툼은 본질적으로 땅과 물질적인 재산 문제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두 사람의 소유가 지나치게 많아져 한 지역에 함께 거할 수 없게 되자, 양가 목자들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아브라함은 세상의 계산법을 따르지 않고, 과거 자신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다시 한번 묵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눈앞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하며 고백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고 가르치며,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립보서 2:14)고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거친 갈등 앞에서도 하늘의 법칙을 적용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고,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분쟁을 원천 차단하여 조카와의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예상치 못한 갈등이 발생할 때, 우리의 본능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려 하지만 성도는 아브라함처럼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당장은 나에게 손해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가장 완벽하고 올바른 해결책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3. 원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인간관계의 다툼을 해결하는 모든 과정의 중심 원칙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좋은 땅을 먼저 양보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은 그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롯은 자신의 눈에 풍요롭고 좋아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탐욕스럽게 선택했지만, 결국 그 땅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무서운 유황불 심판을 받아 모든 것을 잃고 가까스로 목숨만 건졌습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눈앞의 환경이 아니라 모든 생사화복과 축복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믿었기에 대대로 번성하는 놀라운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신명기 30장 15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노라." 참된 승리와 축복은 인간의 탐욕이나 세상의 잔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삶에서 흘러나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4절에서 26절은 주님의 종들이 취해야 할 믿음의 자세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혹시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과 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모든 문제를 넉넉히 극복해야 합니다.

4. 결론

결론적으로, 성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다툼과 갈등은 인간적인 혈기나 세상의 수단으로는 결코 온전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화해와 관계의 회복은 나의 자존심을 과감히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 진실한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믿음의 용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내 이익을 챙기려는 본능적인 탐욕을 통제하고, 이 상황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거룩한 뜻과 지혜를 우선적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삶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을 삶의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을 때, 우리는 눈앞의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브라함처럼 양보하며 평화를 만들어가는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오직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의 세력을 경계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원칙을 붙잡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얽혀 있는 모든 인간관계의 실타래를 가장 아름답고 평화롭게 해결해 주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화목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선포하는 복된 은혜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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